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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역사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사실 예쁘면 구매하는거고, 모든 명품, 모든 브랜드들의 역사나 아이덴티티를 알면서 구매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에루샤, 프라다 등등 역사와 지금까지의 브랜드가 되기까지 과정을 알면 더욱 더 애정을 담아 구매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고 있는 에르메스의 첫 시작은 마차의 안장 가죽용품이었단 것을 아셨나요? 이렇듯 브랜드의 역사는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가브리엘 샤넬 론칭
샤넬은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이 선보인 브랜드입니다. 1883년 파리에서 태어났고 그녀의 가정은 굉장히 가난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병에 걸려 일찍이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그녀에게 관심이 1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샤넬은 수녀원으로 보내져 바느질을 하며 살았습니다. 수녀원에서 7년을 보내고 바느질을 했던 덕에 낮에는 봉제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카페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캬바레에서 밤무대 가수를 같이 겸했던 것이죠. 샤넬이 밤무대에서 썼던 예명이 코코입니다. 이를 따서 지금의 코코 샤넬이 된거죠. 밤무대 가수를 하며 카펠이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이때 카펠의 도움을 받아 본인의 첫 모자 가게를 차리게 되었습니다. 이 때 모자들이 유명 여배우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었고, 샤넬은 점점 유명세를 타게 되면서 1913년에 옷 브랜드인 가브리엘 샤넬을 또 론칭하게 됩니다. 이 때만 해도 굉장히 거추장스럽고 타이트한 디자인의 의상이 많았습니다.
1차 세계 대전, 샤넬의 승승장구 그리고 여성용 바지
1914년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남자들 대부분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자 집에서 가사일을 하던 여성들의 노동력이 자연스럽게 요구되어 졌습니다. 이 때 샤넬은 화려하고 거추장스러웠던 여성복은 단순하고 실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엔 화려한 옷들이 있던 시대였기 때문에 기존에 볼 수 없던 디자인이 나오자 반응은 너무나 뜨거웠고, 샤넬은 신여성의 대표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며 활발하게 노동, 움직임이 필요했었는데 이에 따라 여성들에게 편하고 실용성이 있는 옷을 제공하고자 하였고, 기존의 관행을 깨트려 현대적이고 대담한 여성용 바지를 선보였습니다. 이 바지의 역사는 여성의 자율성과 자유를 나타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블랙 그리고 향수
1926년 샤넬은 수녀원에서 살았을 때 수녀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기존에는 장례식장에서만 입는다는 블랙컬러를 미니멀한 드레스로 만들어서 혁신을 일으켰습니다. 당시에는 화려한 컬러들이 주를 이뤘는데 블랙을 선보이며 여성의 스타일을 변화시켰습니다. 거기에 지금도 우리가 쓰는 향수 넘버 5를 만들어 대히트를 치기도 했죠. 넘버 5의 의미에 대해서 많은 추축들이 있는데 조향사한테 납품 받은 향수 중에 5번째 였다 라는 말도 있고 향수 출시하기전에 점술가에게 어떤 이름을 붙이면 좋을지 물어봤는데 숫자 5가 좋다고 해서 넘버 5 라고 지었다 등 썰들이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후
2차 세계 대전은 전쟁 규모가 더욱 더 컸고, 이 때문에 더이상 샤넬은 판매할 수가 없게 되어 잠시 접었고,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71세의 나이에 파리에 돌아와 다시 샤넬은 전개 시켰습니다. 이 때 나온 아이템들이 지금도 밖에 나가면 볼 수 있는 샤넬 자켓이라고도 불리는 트위드 자켓과 2.55 백입니다. 샤넬은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30년 넘게 파리 리츠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머물었던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호텔에서 머물렀습니다. 지금 현재까지도 코코샤넬의 스위트룸으로 남아있습니다.
그외 샤넬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1. 샤넬의 최초 디자이너인 가브리엘 샤넬이 세상을 떠난 후 기존 코코샤넬의 느낌을 담아두면서 젊은 감각으로 탄생 시켰 던 칼 라거펠트가 영입되어 코코 샤넬 다음으로 샤넬을 이어갔습니다.(현재는 그도 세상을 떠났죠..)
2. 보이백은 코코샤넬이 밤무대 가수였던 시절 사랑에 빠졌던 카펠의 애칭인 보이에서 따왔습니다.
3. 샤넬의 백에 들어가있는 퀼팅은 사실 샤넬이 승마를 할 때 말 안장에 있던 퀼팅모양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디자인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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